삼성 "영어 성적 못믿겠다" 어느 토익 만점자의 굴욕

입력: 2012-04-02 17:01 / 수정: 2012-04-03 08:21
인사이드 Story - 332개 주요기업 서류 합격자 스펙 보니

필수 스펙으로 알려진 토익스피킹·인턴경험 결정적 영향 못미쳐
인문계 지원자는 경제·경영 복수전공 유리

올해 대학을 졸업한 K씨는 4년간 평균 2.9의 학점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보다 낮지만 K씨에게는 뛰어난 어학실력이라는 ‘무기’가 있다. 토익 점수가 무려 990점(만점 990점)이고 토익스피킹은 레벨7(총 8단계 중 위에서 두 번째)이다. 대기업 인턴 경험도 한 번 있다.

반면 K씨와 같이 졸업한 P씨는 학점 평균이 3.7이다. 토익 점수는 730점으로 중간 정도고 토익스피킹 점수는 없다. 인턴 경험도 없다. 이 둘은 모두 LG CNS 공채에 지원했다.

자기소개서 출신학교 등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누가 합격할 확률이 높을까. 참고로 LG CNS는 지원자의 학점 및 토익 점수 하한선이 없다.

답은 P씨다.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그렇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이 포털의 통계에 잡힌 LG CNS 서류합격자 175명 가운데 학점 평균이 3.0 이하는 한 명도 없었다. 학점의 하한선은 없지만 어느 정도의 학점 수준은 기업이 입사자의 성실도 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의미다. 삼성그룹 계열사는 아예 최소 지원자격을 3.0으로 걸어놨다. 학점 최소기준이 없는 기아자동차, 한화건설 등도 실제로는 이와 비슷하게 서류심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인’은 매출액 상장여부 신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1000대 기업’을 선정, 이 가운데 취업정보 사이트 ‘에듀스’와의 제휴를 통해 데이터가 확보된 332개 기업의 서류합격자 통계를 지난달부터 제공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학점 다음으로는 토익을 챙겨야 한다. 토익 점수 역시 최소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사실상의 ‘과락’이 있다. 화학·정유·에너지 회사들은 토익 점수가 다소 낮은 공대 출신자를 종종 뽑긴 한다. 하지만 이 분야를 제외하곤 토익 600점 이하 서류합격자는 거의 없었다.

이 두 가지를 해결했으면 다음으로는 전공이 변수다. 기업들은 경제학·경영학·공학 전공자들을 선호하고 있다.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직장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KB국민은행, LG전자, 포스코, SK이노베이션 등 6개사의 서류 합격자를 살펴보면, 전공 순위 1~3위 가운데 KB국민은행(3위 행정학과)을 제외하곤 모두 이들 학과 출신이었다. 전수훤 SK케미칼 인사팀 과장은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문학 전공자들은 복수전공으로라도 이 계열 학위를 갖추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구직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인턴 등 직무경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인’이 지난달 구직자 39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기업 입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인턴 등 직무경험’(13%)을 꼽은 사람이 네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서류합격자 10명 중 8~9명은 인턴 경험이 없었다.

최근 점점 많은 대학생들이 ‘필수 스펙’으로 여기는 영어 말하기 시험은 서류 합격자 절반에서 3분의 1가량이 ‘점수 없음’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인사팀 관계자는 “토익 점수보다는 지원자의 영어 말하기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오픽(OPIc)이나 토익스피킹을 많이 보는 추세”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Posted by 산과들그리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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